좌탈입망(座脫立亡)
정진을 많이 하고 선정의 힘을 얻으신 큰스님들께서는 적정열반에 드실 때에도
누워서 열반에 드는 것이 아니라 앉아서 좌선하는 자세로 육신을 벗고 고요한
적멸(寂滅)의 세계로 들어간 바 없이 들어갑니다. 참선 납자가 정진을 할 때
얻어진 선정의 힘은 고요하고 흔들리지 않음이 마치 수미산과 같아야 합니다.
정진 중에 잠시만 한눈 팔아도 몸이 앞으로 옆으로 휘청거리게 됩니다.
조금만 좋아도 앞으로 고개가 숙여지고 몸이 끄덕거려집니다. 어느 수행하시는
스님은 앉아서 잠을 잘 주무신다고 하는데 앉아서 좌선하는 자세로 잠을 자는
것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요해서 움직이지 않는 마음의 선정을
어느 정도 얻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소납이 쌍계사 금당선원에서 정진하고 있을
때입니다. 지리산 청학동 근방에서 수행을 하시는 명문 스님이라는 분이 있었
습니다. 하루는 명문 스님이 전화로 도반 스님들께 하직 인사를 나누었다는
것입니다. 그 스님이 머무는 토굴에는 시봉을 하는 노보살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노보살님은 평소처럼 스님 방문 앞에서 문안 인사를 드리고는
"스님! 방에 불을 더 땔까요?" 하고 여쭈었습니다. 그러나 스님은 대답이
없었습니다. 보살님이 가만히 문을 열고 방안을 들여다보니 명문 스님이 고요히
앉아서 참선을 하고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불을 더 때라." 아니면
"그만 때라." 거나 "노보살님 올라왔습니까?" 하는 말씀이 있었을 텐데 답이
없어서 문을 닫고 잠시 토굴 청소를 하였습니다. 청소를 마치고 다시 방문
앞으로 가서 "스님! 스님!"하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응답이 없어서 방문을
열고는 정진하시는 스님 옆으로 다가가서 코 앞에 손가락을 가까이 대어 보니
전혀 숨결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노보살님은 명문 스님이
좌탈입망(座脫立亡)하신 것 같다는 생각이 번뜩 들어서 가깝게 정진하는
도반 스님께 연락을 했습니다. 날도 추운 한겨울에 인근 선방과 토굴에서
정진하는 수행자들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쌍계사 선원에서는 선덕으로
수행하시는 정찬 스님과 소납이 대표로 참석해서 명문 스님의 산중 다비를
보게 되었습니다. 명문 스님이 정진하는 토굴 근방의 죽은 소나무를 자르고
평소 해 놓은 장작으로 간단한 다비식을 가졌습니다. 앉아서 입적을 하셔서
일반인이 쓰는 관에는 모실수가 없어서 나무로 관처럼 만들고 스님을 모신
것입니다. 비록 일찍 가셨지만 수행자들의 마음속에 깊은 감명을 심어
주었습니다. 수행자는 마지막 숨이 떨어질 때 어떤 모습으로 입적을 하는가도
중요합니다. 죽는 문제, 생사를 자유자재한다는 것은 그만큼 선정의 힘과
수행력이 깊어지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명문 스님의
좌탈입망은 산중에서 수행하시는 스님들에게 귀감이 되었습니다.
정여스님의
[머무는 그 자리에서 행복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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